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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1일 월요일

원화채굴자의 일상: 10억 원의 가치에 대해서

일년 전 친구들이 있는 카톡방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 요새 회사만 가면 마음이 우울해지고, 가슴이 답답해. 시부랄! 이게 말로만 듣던 직장인 우울증인가. 니네들도 그러냐?"


그러자 6명의 친구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나머지 한 친구만 대답을 했지.

"OO야, 다 그러고 산다."

  

나는 그 다음에 무슨 말이라도 이어질 줄 알았는데, 아무런 말이 없었고, 곧 바로 다들 다른 주제로 넘어갔지. 솔직히 나는 그 때 약간 충격을 받았어. 

친구라고 믿었던 사람이 겨우 한다는 위로가 '다 그러고 산다'라니...

'다 그러고 산다'라는 말은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말이잖아. 

 (1) 요새 일 때문에 피곤해 뒤질 거 같아 → 다 그러고 산다

 (2)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셨어... → 다 그러고 산다

 (3) 나 회사에서 잘렸어. 어떻게 하면 좋지? → 다 그러고 산다

 

출처: https://pixabay.com/ko/


1. 정말 다 그러고 사는 걸까?

그 때 생각했지. 이 카톡방에서는 앞으로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겠다고. 그리고 '정말 다 그러고 사는 걸까? 왜 이렇게 살아야하지?' 라는 의문이 들었어.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었거든. 직업은 삶의 수단인데, 오히려 지금은 직업을 위한, 돈을 벌기 위한 삶이 되버린 것 같은 느낌? 도대체 얼마나 더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하지? 근데 주위를 둘러보면 다 그렇게 사는 사람 뿐이었어. 어금니 꽉깨물어고, 버티고 버티다 버려지는 삶.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내 어금니를 위해, 회사 윗대가리들의 안락한 삶을 위해, 구겨진 채 바둥거리며 사는 삶.


나는 얼마나 더 이런 구겨진 삶을 살 수 있고 살아야만 할까? 별다른 돈벌이가 없을 경우, 정년까지 20년은 더 이 짓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어. 그러면 내가 20년 동안 얼마를 더 벌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계산을 해봤어. 정말 단순하게 계산하니까 아래와 같은 답이 나온 거야. 


☞ 20년*5000만 원=10억 원(세후 기준)


임금 인상률과 승진 시 연봉 인상을 고려하면 세후 기준 10억 원 정도가 될 거 같더라고. 즉, 10억 원이라는 돈이 앞으로 내가 20년 동안 우울증을 겪으면서 노예처럼 살아가야 할 삶의 가치라는 거지.

▷ 세후 기준으로 설정한 것은 실질적으로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이기 때문임


2. 그런데 사람들은 10억 원이라는 돈을 우습게 생각하더라

10억 원이라는 돈만 있으면 나는 남은 내 삶의 20년을 자유롭게 살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친한 사람들을 만나면 종종 지금 당장 10억 원만 내 손 안에 들어오면 나는 바로 일을 때려칠 거라고 말을 하곤 했지. 물론, 이 때 10억은 집값을 제외한 금융 및 실물자산을 의미해.


그랬더니 열이면 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뭔지 알아? 


☞ 10억 가지고 앞으로 남은 인생 어떻게 살아! 최소한 20억은 있어야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음. 10억 원이면 정말 큰 돈이고 평생 벌어도 벌지 못할 돈인데, 사람들은 10억을 우습게 생각하는 거야. 어떤 사람에게는 20년의 가치가 있는 돈인데 말이야.


그래서 어느 정도 연봉을 받아야 세후 실수령액 기준으로 연봉 5,000만 원이 되는지 인터넷으로 찾아봤지. 결론적으로 6000만 원을 받아야 실수령액으로 50,201,640원을 받을 수 있었어(아래 표 참고). 

☞ 4,183,470원*12개월= 50,201,640원


<2021년 연봉 실수령액>
출처: https://job.cosmosfarm.com/ko/calculator/salary


대기업에서 과장급 이상이면 6,000만 원 이상 받을 수 있겠지만 20년을 안 짤리고 일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잖아. 보통 사기업 같은 경우는 임원이 되지 않고서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자의로든 타의로든 회사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고 들었거든.


그리고 저런 계산이 나오는 것도 연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두 저축을 했을 때를 가정한 거잖아. 생활비를 사용하고 남은 돈만 저축한다고 가정했을 때는 30년 이상 걸릴 걸? 그럼 70세까지 빡세게 일해야 10억 원을 모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와. 


여기서도 문제가 있는데 70세까지 40대에 받는 연봉을 받을 수 없다는 거야. 너같으면 60~70대를 돈 많이 주면서 일시키겠냐. 지금 머리 팽팽 돌아가는 2,30대 젊은 애들도 일자리 때문에 줄서 있는데.


부동산이나 주식, 채권, 금, 달러 이런 거에 투자해서 성공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실패할 때도 많으니 그냥 이러한 점은 고려하지 않았어. 


그렇다면 그들이 바라는 20억 원(집값 제외)을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40대 부터 30~40년 이상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와. 생활비하고, 나이들수록 증가하는 의료비용, 하락하는 노동생산성까지 고려하면 100세까지 일해도 20억 원을 만드는 것은 일반인은 힘들지 않을까?


3. 그래도 10억 원으로 은퇴하는 것은 무리!

내가 위에서 말한 근거로 10억 원은 만만한 돈이 아니다라고 말을 하면 그제서야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래, 니 말이 맞아. 10억도 큰돈이긴 하지"라고 고개를 끄덕여. 그러나 대화의 끝은 항상.


응, 응, 그래도 10억 원 가지고는 못 살음. 어떻게 20억 원을 만들지는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어쨌든 난 못 살음. 20억 생기면 은퇴를 고려해 보겠음. 그만 아닥!


이렇게 끝나. 무한 긍정! 어떻게 든 된다! 10억 원은 나에게 신기루가 아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벌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수명은 유한하고, 현재에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는 점을 알지 못한다. 왜? 내 정신은 아직 늙지 않았으니까, 은퇴나 죽음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고 타인의 이야기니까, 난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끊임없이 자위하고 있는 것이다.


내 삶의 20년은 과연 10억 원의 가치가 있을까? 

우리 모두 한 번쯤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공공기관 연구원에서 생존하는 방법

일단 공공기관 연구원 입사에 성공했다고 쳐.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어. 대체로 입사한 후, 세 달 동안은 밝은 얼굴로 일을 하더라고.  그 이후에는 점점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뭐 이런 잣같은 조직이 다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