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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21일 일요일

공공기관 연구원에서 생존하는 방법

일단 공공기관 연구원 입사에 성공했다고 쳐.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어. 대체로 입사한 후, 세 달 동안은 밝은 얼굴로 일을 하더라고. 

그 이후에는 점점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뭐 이런 잣같은 조직이 다 있냐'고 욕을 하기 시작해. 그리고 '사람인' 사이트를 뒤져보기 시작하지.

아마 공공기관 연구원이라는 조직자체에 기대했던 바가 컸겠지. 우리 연구원 같은 경우에 몇몇은 쌍욕하면 사기업으로 이직을 하기도 했어. 

이번 시간에는 어렵게 들어온 공공기관 연구원에서 살아남기 위한 배경지식과 어떻게 하면 가늘고 길게 생존할 수 있는가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ko/photos/%EC%9E%90%EC%97%B0-%EB%AC%BC-%EB%B0%94%EB%8B%A4-%EC%88%98-%EC%A4%91-%EC%84%A0%EB%B0%95-2616239/



1. 연구원 조직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나?

대개 제일 위에 원장실이 있고, 그 아래 연구기획조정실, 각종 센터와 본부가 있어. 그리고 그 아래 팀들로 구성되어 있지. 이것은 다른 연구원들도 다 비슷할 거야.


2. 업무는 어떤 방식으로 수행되나?

팀 베이스, 연구과제 베이스 두 가지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하게 될거야. 팀 베이스 업무는 팀 고유 업무라고 생각하면 되고, 연구과제 베이스 업무는 어떤 연구과제의 연구진으로 포함되게 되었을 때 맡은 업무를 의미해. 

체계가 좀 잡혀있는 연구원 같은 경우에는 둘 중 하나의 방식으로만 운영이 되는데, 우리 연구원 같은 경우에는 뇌가 없고, 본인들이 고통받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윗대가리들이 많아서 지들 멋대로 두 가지가 섞여서 운영되고 있어.

두 가지가 섞이면 잣같은 게 팀장이 시킨 업무와 연구책임자가 시킨 업무 우선순위때문에 양 쪽에서 욕을 맛있게 먹을 수밖에 없어. 다 지들 일을 제일 먼저 하라는 거야. 지들끼리 서로 조율을 해주면 될텐데 일반적으로 그런 수고는 안 하려고 하지. 

왜냐고? 나의 일이 아니니까!


3. '겸직 발령'과 '테스크포스(TF)'

이게 끝이냐. 노노. 시킬 일은 많은데 사람 수가 적으면, 사람을 더 뽑는 것이 정답이잖아? 근데 잣같은 연구원 경연진들은 맨날 인건비가 없어서 못 뽑는다고 해(신기하게 연말이 되면 없다던 인건비가 남아서 골칫거리가 되지). 그러면서 하는 짓이 '겸직 발령''테스크포스(task force, TF) 만들기'야.


(1) 겸직 발령

 '겸직 발령'이 뭐냐? 말그대로 A팀 소속이었던 팀원을 B팀 소속도 겸하게 하는 거야. 만약에 10명이 있는데, 이 10명이 A팀과 B팀에 겸직 발령을 받으면 문서 상으로는 20명(A팀 10명+B팀 10명= 20명)이 되는 마법같은 일이 생기는 거지. 자, 그럼 인원이 늘었으니 일도 더 많이 해야겠네 하면서 업무를 막 때려박는 거야. 

한 사람한테 많게는 3개의 팀에 겸직 발령을 내는 경우도 있어. 한 사람이 3팀의 업무를 동시에 해야 한다고 생각해 봐. 정상적인 뇌를 가진 경영진이라는 효율성과 노동생산성을 생각해야 하는데, 윗대가리들은 어차피 본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부하가 겸직을 얼마나 하든 별 상관 안 해. 

부하가 하는 일이지 자기가 하는 일이 아니니까!


(2) TF

'TF'는 뭐냐? 그냥 이벤트 성 업무가 주어지면 여러 팀에 있는 사람을 끌어모아서 임시팀을 만드는 거지. 예를 들어 매년 연초에 기관 경영평가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니, 경영평가 TF를 만들어 다 함께 보고서를 작성하는 거야. TF에 들어간다고 원래 주워진 업무가 줄어들까? 그건 아니지. 팀업무나 연구과제업무는 원래 해야하는 일이고, TF 업무는 전사적인 업무니까 그 업무도 니 일이 되는 거야.

우리 연구원 같은 경우 상시로 3~4개 TF가 돌아가고 있어서 거기에 들어간 실무자들은 지옥을 보고 있지. 어차피 팀장, 부서장, 센터장, 원장 이런 사람들은 입으로만 일하니까 TF가 100개가 생겨도 별 상관 안 해. 실무자들만 죽어나는 거지.


4. 조직 개편

주로 원장이 새로 임명되면 '조직 개편'이라는 것이 대대적으로 실행돼. 말 그대로 기존에 있던 조직을 새 원장의 입맛에 맞게 바꾸는 거지. '조직 개편'이 시행되면 팀장이나 부서장, 센터장 같은 보직자들도 물갈이가 되고, 팀도 해체되거나 새로 생기게 되면서 팀원들도 새로 구성되지. 

우리 연구원은 워낙 체계적이라 원장이 바뀌지 않았어도 매년 조직개편을 한 적도 있어. 임직원 수가 몇 천명 있는 기관도 아니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인데 뭐하러 자주 조직 개편을 하는지 ...

'조직 개편' 시 연구원 돌아가는 것을 보면 '각자도생'이 뭔지를 알 수가 잇어. 차기 팀장으로 지명 받은 사람은 같이 일할 팀원들 끌어모으려고 물밑에서 수시로 펌프질을 하고, 소속 팀을 변경하고 싶은 하위 직급자들도 끊임 없이 로비를 하지. '조직 개편' 전에 보직자 였던 사람들은 '조직 개편' 후에도 보직을 놓지 않으려고 발광을 해.

이 때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이 먼저 간택을 받으면, 나머지 떨거지들은 남는 자리에 뿌려지는 형태로 인력 배치를 하게 돼. 체계적인 분석을 통해 개개인의 적성에 맞게 뿌려질 거라는 기대는 하지마. 인적자원 관리는 따위는 개한테나 줘버리라는 마인드로 윗대가리들이 알아서 느낌나는 대로 뿌리는 거니까.  

정식으로 발령이 나기 전 구두로 통보를 받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팀으로 발령이 날 예정이라는 것을 안다면?

실제 몇몇 사람들이 팀장이나 부서장을 찾아가서 질질 짜거나 지랄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진짜 발령부서가 바뀌긴 하더라. 저런 자세도 연구원에서 살아남으려면 필요한 덕목이긴 한 거 같아.


5. 신규입사자에 대한 관리

신규입사자가 팀에 배정이 되면, 팀 선배들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어. 그러나 신규입사자들이 막상 배정을 받고, 자리에 앉아 있으면 말 걸어주는 선배들은 별로 없을 거야. 

개인주의가 강해서 누가 새로 왔든 관심이 없거든. 그냥 간단히 인사하고, 각자 자기 할일 계속하다가 점심에 신규입사자 환영 팀회식 한 번 하고 끝이지.

요새는 저녁 회식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라서 음주가무를 즐기지 않는 신규입사자들에게 좋을 거야. 하지만 그 만큼 팀원 간의 끈끈한 관계 형성이 안 되니 신규입사자들도 팀에 대한 소속감 같은 것은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 

연구원 차원에서 신규입사자를 위해 멘토나 멘티 매칭도 몇 번 시도해 보긴 했는데 흐지부지되서 더 이상 운영하지 않고 있어.

신규입사자에게 업무에 대해 가르쳐 주는 사람은 주로 팀선배들이야. 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워낙 유형이 천차만별이라 맨투맨으로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선배가 있는가 하면, 책자 하나 던져주고 알아서 하라는 선배도 있지.

요즘 입사한 신규인력들을 보면 점심식사도 팀선배과 먹지 않고, 주로 동기들과 같이 먹더라고. 예전에는 그래도 점심식사는 팀원들끼리 먹었거든. 점심시간은 개인 시간이니 보기 싫은 사람이랑 같이 있기 싫은 거겠지...


6. 그래서 공공기관 연구원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쩌라는 거임?

 

(1) 최소 부연구위원 이상 직급으로 입사해라

부연구위원 이상으로 입사하면 아무리 업무수행 능력이 병신같아도 아래 직급시켜서 수습하면 되니까 어떻게든 해결은 된다. 그 실무자는 지옥을 보겠지만...


(2) 업무 능력을 100% 보여주지마라

업무 수행 능력이 너무 뛰어나면 모든 일이 당신에게 몰릴 것이다. 운이 좋으면 승진도 빨리 되겠지만, 운이 나쁘면 승진은 커녕 일만 죽도록 하다가 버려진다. 

단적인 예로 우리 연구원 같은 경우는 업무 능력이 좋으면 일 잘한다고 일을 다 몰아주고, 업무 능력이 나쁘면 일을 안 시킨다. 평가는 좀 안 좋게 받겠지만 그래봐야 월급으로 10만 원 차이도 안 난다. 그렇다면 차라리 일 안하고 월급 10만 원 덜 받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3) 특정 업무에 스페셜리스트가 되지마라

당신이 특정 업무의 스페셜리스트가 된다면 아마 그 일은 퇴사할 때까지 당신을 따라 다닐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팀이 달라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연구원에서는 당신의 의사따위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당신이 여태까지 그 일을 해왔으니 적임자가 되는 거다. 물론 다른 업무가 있어도 업무는 줄여주지 않는다. 그 일도 니일, 이 일도 니 일이 되는 거다.


(4) Yes맨이 되지마라

당신이 주위 사람들의 요청이나 요구에 무조건 yes하는 순간, 당신은 그들에게 호구로 낙인 찍힐 것이다. 때로는 일년에 한 두번 정도 미친넘처럼 화끈하게 지랄하거나 따지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어느 새 남의 업무까지 모두 당신의 업무가 되는 마법을 보게 될 것이다. 


(5) 업무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

솔직히 부연구위원 이상이 되지 않으면 업무로 자아실현할 확률은 거의 0%라고 보면 된다. 연구원 조직에서는 그 아래 직급은 대부분 꼬붕이라고 보기 때문에 발언권도 없고, 의견이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초반에 의욕이 충만했던 사람들도 윗대가리들의 병신같은 업무지시로 노예화되거나 이직을 준비한다. 

정말 충고하건데, 자아실현을 하고 싶으면, 연구원 밖에서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제 연구원을 원화채굴하는 곳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연구원은 돈버는 곳이지, 자아실현을 하는 곳은 절대 못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연구원에 무엇을 기대하든, 연구원은 그 이상의 병신짓을 할 것이다.


(6) 라인을 잘타라

연구원도 사람사는 곳이다 보니 정치질로 승승장구하는 사람이 많다. 어차피 원화채굴을 위해 일하는 것이니 주둥이로 일하는 것이 제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을 보호해줄 상사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해서든 부서장급 이상 보직자의 눈에 들어라. 개인적인 일을 해달라고 해주면 해주고, 술을 마시자고 하면 마셔라. 그러면 업무성과와는 상관없이 쭉쭉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7) 해초처럼 살아라

해초는 물살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뿌리채 뽑혀나가지 않는다. 연구원 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뇌를 비우고 위에서 병신같은 일을 시켜도 그러려니 하면서, 업무를 수행해라. 

그 업무의 옳고 그름, 효율성과 비효율성 따위는 본인의 뇌로 판단하지 마라. 판단하면 멘탈이 흔들리면서 홧병이 생길 수 있다. 그냥 '나는 해초다' 라고 자기최면을 끊임없이 걸면서 뇌를 비우고 기계처럼 일한다면, 가늘고 길게 연구원에서 원화채굴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해초처럼 살아가는 것이 이직을 생각하지 않고, 돈을 버는 목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하위 직급자들에게는 가장 실행하기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공공기관 연구원에서 생존하는 방법

일단 공공기관 연구원 입사에 성공했다고 쳐.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어. 대체로 입사한 후, 세 달 동안은 밝은 얼굴로 일을 하더라고.  그 이후에는 점점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뭐 이런 잣같은 조직이 다 있냐'...